2004-02-04 16:16:16,

 

3차원에 3차원을 더한 입체 구조(3D on 3D)로 놀랄 만큼 부드러우면서 보송보송, 보송보송 커버를 자랑하는 위스퍼 소프트 라이트(Whisper SoftLight). 위스퍼가 13년의 연구개발기간을 거쳐 만들어낸 신제품이다.
2.1~2.8일까지 문화일보갤러리에선 신제품 발표와 함께 생리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생리대 History」전이 열렸다.

 

 

 

(19세기~20세기 초에 사용된 중국의 생리 패드 고정 커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생리스펀지와 케이스)

 

(1930년대에 사용된 생리컵. 2차대전으로 인해 고무가 부족하여 생산을 멈췄다)

 

(a. 1950년대 후반 Tassette라는 회사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생리컵/ b. 1977년 발명된 생리혈 추출기, 실제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 c. 19세기 후반, '여성들을 위한 가장 편안한 기구'라 언론에 보도되었던 생리멜빵.)

 

(위스퍼가 13년의 연구개발기간을 거쳐 만들어낸 신제품, 위스퍼 소프트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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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2 14:56:31,

 

 

 

공룡화석 발굴키트이라 말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은 체험 학습 놀이.

흙판과 섬세하게 땅을 파는 도구, 그리고 붓이 들어있다.
이 밖에 다양한 제품은 www.digitup.netfir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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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2-02 14:06:24,

 

 

 

 

네덜란드의 Hoofddorp에 등장한 거대한 버스정류장(?) / 폴리스티렌 블록을 쌓은후, 폴리에스텔 스킨으로 단단하게 마감을 하였고, 세계 최대(50m x 10m x 5m)의 synthetic structure가 되었다. 총 제작 예산이 무려 110만 USD. 이 거대한 폴리머 버스정류장을 만들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는데, "20년이상을 무리없이 견뎌내야 하며, 불타지 않아야 하고, 축구팬들의 행패(?)에도 견뎌야 하고, 꼬마들이 위에 올라갈 수도 없어야 한다." 가 조건이었다고 함. (출처 : Wired)

Hoofddorp Bus Station

address: Voorplein Spaarne Ziekenhuis
dates: 1999 (design) / 2003(completion)
architectural design: NIO architecten, Rotterdam
client: Schiphol Project Consult bv, Schiphol
contractor: Ooms Bouwmaatschappij bv, Avenhorn
constructor: Ingenieursbureau Zonneveld bv, Rotterdam
costs: 1.000.000 e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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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31 10:56:13,

 

what's up 헤이리페스티벌2003
조금 이르지만, 성급하지 않길 바라며
글/Dunpeel 기자 사진/정대웅 기자

자유로를 타고 잘 달리다 좌회전 한번 한 것뿐인데, 범상치 않은 동네에 발을 디뎠다. 방향성을 잃은 불안감에 헤이리아트벨리의 지도를 펼쳐 현재 위치를 확인하니, 후문이라 할 수 있는 제3진입로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정문인 제 2진입로를 향해 아트벨리를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코스시험장 같은 길, 빠짐없이 보고 싶은 욕심, 미완성된 모습에 대한 의구심, 두 다리가 꽤나 고생하겠다는 걱정' 별의별 생각으로 궁시렁대다 이윽고 정문에 도착하였다. 조금은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을 살펴보니 온갖 잡생각은 사라지고 떠오르는 건 일단 하나다. "15만평이 넓긴 넓구나!"

 

 

 

휴일에 실수로 학교 간 기분
지난 10월 3일부터 19일까지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위치한 헤이리아트벨리에서 '자연과 예술(Nature & Arts)'을 주제로 한 문화예술행사 「헤이리페스티벌2003」이 열렸다. 1년 전 성곡미술관에서 도면과 모형을 통해 선보인 맛배기가 실현되어 일반에게 공개하는 첫 행사였다. 키워온 기대감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두근대는 설레임이 또 있을까? 멀지 않은 길이 더욱 더 짧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게 부푼 가슴은 오버였다. 도착하여 본 「헤이리페스티벌」의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그것은 마치 개발현장을 답사하러 온 느낌이었다.
공사중 표시판, 보호팻말과 안전선, 포장된 도로와 비포장된 도로, 여기저기 튀어나온 철골 등, 된 공사보다 안된 공사가 더 많았다. 막말로 '무슨 생각으로 벌써 뚜껑을 땋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현장이었다. 물샐 틈 없는 꼼꼼한 계획 속에 추진된 헤이리아트벨리가 이런 오점을 보이면서까지 무리하게 진행한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복합형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나갈 헤이리아트벨리가 고약한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문의 무덤덤한 자원봉사자를 통해 행사 관계자와 만나 헤이리아트벨리 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워낙 넓은 장소에서 열린 행사이기에 멀리서 바라볼 땐 몰랐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의외로 많은 관람객이 찾아와 있었다. 그 중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디지털 카메라로 연신 찍고, 노트에 무언가 써내려 가는데 열심이었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비록 미완의 모습이기는 하나 입주하여 진행되고 있는 건물들은 오늘날 현대건축의 교과서이고, 지난 후엔 21세기의 건축이 담긴 역사적 공간으로 자리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들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충분하고, 페스티벌도 그들의 동기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러나 공부하려는 이유만으로 「헤이리페스티벌」에 온 사람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빡빡한 시간 속에 문화체험을 하고자하는 동기를 갖고 차편을 통해 애써 찾아온 이들도 있겠다. 그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헤이리아트벨리의 성장의 열쇠를 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골치 아픈 건축과 현대미술 강의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적지 않게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헤이리아트페스티벌2003」이 드러나 있는 문제만을 보여준 행사는 아니었다. 널 부러진 공사판 현장, 가족단위의 자유로운 관람 방법으론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단점을 접고 본다면,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 '자연과 예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헤이리, 인간과 자연이 함께 키워나간다
'자연과 예술!' 참 흔하디흔한 주제다. 올해만도 이 주제로 수많은 페스티벌과 전시 공연이 열렸다. 그리고 그러하면서도 희한 한 것이 꾸준히도 다른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다가가는 방법은 인간이 자연에게 얻은 혜택만큼이나 많은 가 보다. 그럼 「헤이리페스티벌」이 보여준 자연으로의 접근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징적인 볼거리를 찾아 기웃거린 이는 볼 수 없다. 곳곳에 펼쳐진 행사를 보기위해 발품을 팔며 헤이리아트벨리를 나다닌 이나 우연히 만날 수 있다.
헤이리페스티벌의 '자연과 예술'을 만나기 위한 시작은 헤이리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하우스에서 시작된다. 이곳엔 헤이리에 실제 구현되고 있는 건축물(30~40동)의 모형이 전시 되 있는데, 시간대만 맞춰 온다면 세미나를 통해 헤이리아트벨리의 자연에 대한 접근법을 보다 빨리 이해 할 수 있다. 이해를 하고 본격적인 투어를 시작하는 것과 무작정 발품을 파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시작부터 벌어진 갭을 좁히기는 쉽지 않으니 되도록이면 페스티벌의 일정을 확인하고 시간대를 맞춰 와야겠다. 세미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공간 속에서 건축물을 바라 볼 수 있는 넓은 시각이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모습이 아닌 진행단계에서 이뤄진 페스티벌이기에 그 시각의 있고 없고 차이는 크다. 헤이리아트벨리를 단순한 '서울근교의 페스티벌 무대냐? 문화예술을 키워나갈 새로운 개념의 도시냐'로 구분 짓고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각을 가짐으로 해서 헤이리아트벨리와 자연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세미나의 내용만으로 헤이리페스티벌이 말하고자 하는 '자연과 예술'을 받아들일 순 없다. 세미나는 어디까지나 '이런 식으로 진행하겠다'는 내일의 약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직접 관객의 입장으로서 헤이리 안에서 찾아 이해할 수 있는 '자연과 예술의 어우러짐'이 없다면 헤이리페스티벌이 아닌 헤이리세미나일 뿐이다. 커뮤니티 하우스를 나와 '그것'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관람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넓어 여행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정 끝에 '풍경속의 미술전'이 열리고 있는 갈대광장에서 '그것'을 만나게 되었다. 만남은 발견이었다. 잠시 지친 다리를 달랠 겸 찾은 갈대광장에서 들린 맑은 종소리가 그 시작이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니 방금 지나쳐온 곳이었다. '무슨 소리 일까?' 누군가의 장신구가 부딪히는 소리겠거니 하면서 온 길로 되돌아 걸어갔다. 그리고 늪지를 가로 짓는 다리 위에서 바람이 흔들어 맑은 소리를 내는 종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지나치며 보지 못한 재미가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좀더 가까이 다가가던 중 또 하나의 발견을 하게 된다. 다리 난간에 길게 연속적으로 금속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소리가 궁금하여 살짝 튕겨보니 맑은 실로폰 소리가 울려 퍼진다.
너무 재미있어 다리 끝에서 끝까지 뛰어가면 파이프를 흩어보았다. 마침 다리 위를 지나가던 관람객들도 자연스럽게 파이프를 흩으며 웃음 짓는다. '어디 또 뭐가 없을까?' 주변을 돌며 이것저것 살펴보다 잠시 전까지 지친 두 다리를 달래기 위해 걸쳐 않은 바위가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의 바위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작품들이 페스티벌에 맞춰 기획 설치된 작품들이 아닌 문화단지 조성의 설계단계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조형물들임을 알게 되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만들어진 인위적 건축물 안에 미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갈대밭에서 늪지 위를 붉게 물들인 노을과 저녁바람에 흔들리는 맑은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토록 밝고 지나간 인도의 보도블록 틈 사이로 숨 쉬는 흙을 볼 수 있었고, 먼 길을 짧게 만든 안규철의 '생각의 화두' 또한 만날 수 있었다. 헤이리페스티벌에서의 자연과 예술은 어우러짐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우러져 함께 자연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단지 설치 조형물이겠지만, 기나긴 시간 그 자리에서 주변의 수목과 자연의 변화를 함께 한다면, 자연의 때가 묻어 빛이 나는 문화와 자연과 인간을 잊는 미술로 자리 할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자라나길 바라며
헤이리아트벨리는 '영국의 헤이 온 와이Hey on Wye와 같은 책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아래 몇몇 출판인들에 의해 기획되었다.(참고로 '헤이리'라는 명칭은 파주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농요 '헤이리 소리'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뛰어난 건축기술과 재력만으론 재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헤이 온 와이'가 책의 마을로 발걸음 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다. 그렇다고 50년도 되지 않는 역사 속에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자리 잡았다고 말 하는 사람은 없다. 그 바탕엔 천년의 시간동안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가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헤이리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인 헤이리 역시도 복합형문화공간으로 천년 이상의 내일을 바라 본 문화도시를 만들어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계획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

수개월 만에 찾아오니 동네가 새롭고, 수년이면 강산도 파헤쳐 본모습이 기억나지 않는, 무엇하나 오래 된 것 지켜보지 못하는 안달난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인가? 정착하여 자연을 받아들이며 성장을 꿈꾸는 헤이리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낡아 자연스럽게 때가 묻어 빛바랜 아름다움이 담긴 것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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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8 15:04:53

 

dunpeel's 공유폴더①
배틀로얄에 참가했다면 당신의 선택은?

 

 

 

영화 제목이자, 배경이 되는 '배틀로얄(Battle Royale) '은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낙오할 인생은 미리 걸러낸다"는 근 미래의 사회법이다.
중학교 졸업식 날, 서로 제한된 공간에서 각자의 무기를 들고 싸워 살아남는 자만이 사회에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충격은 교육시간에 잡담을 하는 학생의 이마에 칼이 꽂히면서 시작된다. 학생들은 현실을 직시하지만, 처음엔 서로 죽이기를 꺼린다.
그러나 탄탄한 스토리가 이들의 숨통을 조여오자 적극적으로 학우 사냥에 들어간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 또한 가지가지다.
자살하는 학생, 함께 힘을 모아 살아남으려는 자들, 살인을 즐기는 자 등등…. 우수인자를 가려내기 위한 <배틀로얄>의 방식은 과학의 기술과는 무관하다. 1997년 개봉한 영화 <가타카(Gattaca)>가 과학기술로 우성인자를 거러냈을 때의 단점을 지적하듯 실전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말하듯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배틀로얄> 1편의 마지막 생존자는 3명이다. 이중 한명은 돌아오는 배안에서 죽고 서로 간에 애정을 갖고 살아남은 남녀 한 쌍은 집에 돌아와 스스로의 무기를 챙긴 후, 새벽을 가르며 어딘가로 뛰어간다.
그리고 2003년 이들이 어디로 뛰어갔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배틀로얄2>가 개봉한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배틀로얄1>에서 혼자 안 살고, 둘이 살아 도망가 'BR(Battle Royale)법'에 반대하는 남녀 한 쌍을 찾아 죽이는 것. 같은 반 친구들끼리 안 죽여도 된다는 것에서 조직사회의 중요성을, 거기다 2인1조로 움직여 한명이 죽으면 나머지도 죽는다에서 협동심을 강조하고 있다.
1편에 비해 충격이 빈약하다.
<매트릭스>처럼 전편에 너무 큰 걸 벌려놓은 댓가라 하겠다. <배틀로얄2>는 전편의 감독 후카사쿠 킨지가 메가폰을 잡고 시작하였으나, 영화 제작 중 전립선암으로 사망하여 그의 장남 켄타가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
또한, <배틀로얄> 출연은 아이돌스타로의 데뷔가 되기에 영화 개봉 전부터 매스컴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푼기대 속에 개봉한 <배틀로얄2>를 보고 느낀 것은 한 가지. 지나치게 솔직할 수 있을 인간의 본능이 교육적으로 미화되어 <터미네이터> 꼴이 났다는 실망이었다. 전편의 예기를 어설프게 수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죽기 전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 아톰을 만든 것이 후회 된다"라고 말한 것처럼, 후쿠사쿠 감독도 배틀로얄의 잔혹한 폭력성을 만든 것을 후회 한 것일까?
<배틀로얄>은 호러영화로 분류된다. 어린 학생들 간의 잔인한 도륙 장면이 쉴 새 없이 나오기에, 그러나 진정한 공포는 영화가 끝난 후 찾아온다. <배틀로얄>이 허구가 아닌 현실도 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느끼면서부터 인간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임을 두려워하게 된다.


함께 본 친구들 중 누군가가 물었다. "배틀로얄의 상황 속에서 너라면 어떡하겠냐?" 순간 아무도 쉽게 답하지 않았다. 모두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였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가장 인간답게 자살을 택하지 않는다면 친구라도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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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7 14:32:00

 

News+News 미술인회의 발족
미술인의, 미술인에 의한, 미술인을 위한 단체는
글/Dunpeel 사진/정대웅 기자


지난 9월 6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문화회관에서 ‘미술인회의’의 창립대회가 있었다. 총 창립회원수 436명(9월6일 기준)중 110명이 참여하여, 4장 39조의 정관과 감사 선출(2명), 운영위원 선출(12명)을 표결로서 정하고, 운영위원대표의 창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공식적 창립을 선언하였다. 창립준비과정부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던 미술인회의. 창립이 있기까지 공개된 자료를 통해 그 과정을 살펴본다.

 

 

 

온라인 + 오프라인 미술단체 출범


올해 미술계는 감정의 동요 없이 지켜 볼 수 없는 사건의 연타였다. 예술과 외설의 시비, 미술품 양도차익 종합소득세, 미술교육 축소, 형식적인 미술문화 지원 등. 감정을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틈도 없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술인들에게 새로운 공통적 특징이 생겨났다. 부당한 제도적, 사회적 피해경험자라는 것이다. 정기적 행사처럼 반복되는 문제에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일시적인 해결점을 찾아 나가는 대물림, 새로운 문제에 속수무책으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시간들. 계속되는 사건만큼이나 인권보장 속에 자유로운 창작환경의 절실함은 커져만 갔다. 이에 2003년 미술인들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화는 그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특히 온라인의 경우 꾸준히 방문하여 참여하지 않으면, 지금 어떤 문제들이 화두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빠르고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온라인 토론은 미술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미술인이 한데 모이고, 의견을 말함에 있어 관습적 영향을 받지 않아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허나 의견을 정리한 후, 토론을 통해 얻은 결론적 입장을 각자 자신의 활동 단체, 분야에 맞는 성격으로 추진해 나가는 움직임은 있어도, 토론을 함께 이끌어 나갔던 이들이 함께 공동의 목소리로 이뤄나가는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그것이 온라인 토론의 한계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온라인을 통해 열띤 토론을 함께 나누었던 몇몇 이들이 온라인 토론의 한계에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논쟁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추론된 결론을 토대로 직접 활동을 전개하는 단체를 제안한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연락을 취하여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으고, 단체의 형식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첫 모임이 2003년 4월 5일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강홍구 공성훈 김복기 김준기 박찬경 배영환 박찬국 서진석 안규철 오혜주 백기영 전정옥 이관훈 이병한 이태호 유근호 장경호 전승보 전용석 정정엽 홍현숙 황세준(총 22명). 이들은 이날 ‘미술인회의(가칭)’로 단체명을 정하고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부터 성격, 규모, 주체 등 포괄적인 내용을 논의하여, 이태호 주비위원장과 12인의 실무팀을 선출하였다. 이후, 총3차의 주비모임 전체회의와 4차의 실무팀 회의를 갖고 5월 29일 홈페이지(www.misulin.org) 오픈을 통해 취지문과 창립을 위한 준비과정을 공개하였다.

 

 

 

 

 

꼭지점 없는 단체에 대한 불안은


창립대회를 통해 결정된 미술인회의 정관 제1장 총칙 제2조를 보면 미술인 회의는 ‘이념과 계파를 넘어서는 미술인과 미술향유자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에 의해 시각예술의 창작, 유통, 향유에 있어 합리적인 미술문화와 제도를 정립하고 미술의 사회적 기여를 확대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곤 해도 정관을 통해 본 미술인회의의 목적만 보고 ‘미술인 회의가 무엇이다’라고 말하긴 힘들다. ‘무엇’이라고 말하는 데는 뚜렷한 특징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여러 단체 중에서 미술인회의가 그만의 색을 갖지 못한다면, 목소리 하나를 둘로 나눠 그 힘을 분쇄시키는 꼴이다. 또한, 단체의 시작에서 특별한 색을 갖지 못하면 방향성을 잃을 위험도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술인회의에 대한 ‘색’에 관련 내용을 Q&A게시판에서 보았다. 그리고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색에 대한 질문에 ‘특별히 어떤 색을 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굳이 말하라면 무지개와 같이 다양한 색을 가진 자유로운 연대다’라고 다소 추상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흑백논리가 아닌 자유로운 방향과 융통성 있는 단체를 지향해 나가겠다는 내용인데, 역으로 보면 이것은 ‘특별한 색을 갖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내용 또한 Q&A 게시판의 ‘다른 미술인단체와의 관계는?’이라는 질문의 답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답변인즉슨 ‘미술인회의는 범미술인들의 네트워크를 지향하므로, 목적을 공유하는 미술인 단체와 공조, 연대 등, 모든 논의에 열려 있다’고 말한다. 효율적인 단체의 관리 운영에서 볼 때, 모호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체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술인회의는 온라인의 다양한 미술인들의 글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직접 행동으로 옮겨진 단체이다. 미술인회의의 회원이기 이전에 각기 자신의 뚜렷한 마인드를 가진 이들이다. 그렇기에 정의 되지 않은 색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홈페이지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하는 이와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글이 충돌하고 있다. 또한, 간간히 운영위원들이 미술인회의에 대해 정의하는 글들을 올려 미술인회의 혼란에 촉매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게시판과 회의록 자료를 하나하나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의문의 방향을 잘못짚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방향의 특징이 왜 없을까?’가 아닌 ‘특별한 방향의 특징을 왜 잡지 않으려는 걸까?’였다.


자유게시판을 통해 본 내용 중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하는 지적이 ‘모호한 방향성’이다. 기타 여러 단체의 자유게시판에서도 ‘미술인회의의 모호한 방향성’에 대한 지적을 하는 글을 접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러한 이유로 인해 ‘미술인회의의 미래는 불안하다’라고 속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미술인회의 준비운영위원들이 이에 대한 특별한 답변을 준비하지 않는다. 흔히 웹상에서 ‘태클’이라 불리는 글과 답변이 올라온다 해도 자유게시판의 익명에 중요성을 말하며 지켜나간다.
그 이유는 미술인회의는 처음 시작의 목소리가 만들어진 곳이 온라인 미술게시판이고, 회원들의 주요 참여 루트 또한 온라인 미술게시판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를 실천하지 못하는 온라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작되었다. 어떠한 문제든 상하관계 없는 발언 속에 올바른 결론을 찾아내어 실현해 나가는 것이 미술인회의다. 그렇기에 모순이라 볼 수 있는 자유로운 발언대는 혼란이 아닌 미술인회의에서 빠질 수 없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술회의에 특정이념이 자리잡는 것은 오히려 다양한 의견을 만들어내는데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다.
만약 미술인회의가 뚜렷한 성격을 정하기 위해 이념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미술인 누구나 참여하여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있겠는가?
미술인회의 운영위원회는 끊임없는 논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의도적인 노력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미술인의 이름으로


흔히 참여와 결정의 권한을 갖고 있는 자를 권력자라 말한다. 미술인 회의는 회원의 투표로 운영위원과 감사를 선출하고, 선정된 운영위원은 운영위원장을 선출한다. 또한, 정관의 변경과 안건에 대한 투표역시 모든 회원의 참여로 이뤄진다. 운영위원이 가진 권력이라면 회의에 대한 안건과 일시 장소를 정할 수 있고, 내규를 정할 수 있는 정도라 하겠다. 이외에도 미술인회의의 정관을 읽어보면 참으로 민주주의적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과연 이것이 지켜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시작과 진행이 다른 여타의 단체를 경험해 보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인회의가 생겨나게 된 바탕을 보았을 때, 결코 불가능 할 것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미 안건에 대한 토론문화가 자리잡혀 있는 단계에서 시작하였고, 무엇보다 현 미술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숙지하고 있는 미술인이 만든 미술인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술인회의는 창립대회를 갖고 실무 운영위원을 선출하였다고는 해도, 내규 확립과 대외적인 미술인회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인회의의 내일을 넘겨짚고 찬물을 붇는 것은 미술인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미술인회의는 미술계의 참 발전을 꿈꾸는 미술인들의 참여에 의해 그 미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10월 2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은 ‘인간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느냐?’를 다루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세계 3차대전이 끝난 21세기 초. 독재자는 ‘인간의 감정’이 전쟁과 사회문제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감정 말살 정책을 시행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 리자}를 가볍게 소각시켜버리는 영화 속 주인공(후에 주인공은 감정을 되찾고 독재에 대항한다). 이 영화에선 소설, 음악, 미술 그 무엇도 허락되지 않는다. 문화 박멸의 극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영화라지만, 어떻게 이런 세상이 가능한 걸까? 영화는 간단하게 설명한다. 인류의 감정을 통제하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이 21세기에 발명되기 때문이라고.

미술인으로서 2003년 미술계를 바라봄에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면, 스스로가 “혹시 ‘프로지움’에 통제된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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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7 13:20:51

 

2003한국실험예술제 what? upⅡ
실험예술, 대중화 비즈니스에 눈을 뜨다
글/dunpeel 사진/정대웅 기자


9월 15일, 「2003 한국실험예술제」의 갤러리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라메르를 찾았다. 전시장내엔 국내 실험예술의 지나간 기억이 사진으로 남아 질서 정연하게 걸려있다. 사진 한 장 한 장은 사고의 틀을 깨기 위해 몸부림쳤던 수많은 작가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조용히 입구를 통해 들어와 벽면을 따라 사진들을 바라보며 출구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 그 관람 대열은 마치 기억해야 할 날이 올 때마다 특정 장소를 방문해 과거를 추모하는 이들의 모습과도 같다. 이러한 사진전에 대해 ‘18일의 짧은 예술제기간 안에 지나간 기록을 전시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운영이 아니냐?’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간 30여년의 국내 실험예술을 되짚는 시간으로 볼 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실험예술, 교류를 통한 교감으로 다가간다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인 9월 17일, 실험예술 발표자와 참관자 그리고 수많은 매체의 취재열기가 갤러리라메르에 가득하다. 물론 이러한 인파 속엔 호기심에 대한 만족을 찾기 위해, 단지 이슈를 찾기 위한 관심도 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 추진해온 ‘실험예술의 대중화’ 운동으로 꾸준히 늘어가는 관객의 관심도 함께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실험예술은 꾸준한 창작활동을 펼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흔히 지금까지도 실험예술은 충격적인 볼거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은데, 이는 1960년대 국내 행위예술의 시작 단계인 해프닝으로부터 자리 잡아온 실험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70년대 사회 비판을 소재로 한 이색적인 충격-이벤트에서,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80년대 퍼포먼스를 거쳐, 전문적인 퍼포머가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종합적인 행위예술까지 국내 실험예술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으로 변모해 나갔다. 이에 대중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하였고, 매스컴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 충격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실험예술을 음지로 몰아넣는데 일조하였다.
비단 실험예술에 대한 포기는 대중만이 아니었다. 예술계 전문가들 역시 방대한 실험예술계의 움직임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관객은 ‘퍼포먼스=난해한 충격적 볼거리’, 매스컴은 대중에게 ‘난해한 볼거리 제공’, 평론가는 ‘나중에 풀어야 할 난해한 문제’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퍼포먼스는 난해하다’를 외쳤다. 그래도 다행히 모두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그로기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퍼포먼스의 풀린 실을 하나씩 모아나가는 단체가 있었다. 2000년 3월 현시대의 문화예술과의 교감을 통해 한국실험예술의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창립된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 그들이다. 실험예술가들의 모임인 ‘KoPAS’는 창립이후부터 전국 곳곳에 100여회의 찾아가는 공연을 펼쳐나갔다.
이전의 개인적인 창작물뿐만 아니라 행사의 주제를 살린 작품을 공동 기획해 선보였는데, 이러한 활동은 대중들에게 실험예술을 접할 수 있는 폭 넓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2001년 2월 KoPAS는 인터넷에 동호회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객과의 대화를 주도하였다. 실험예술만큼이나 실험예술가는 다가가 말을 걸기 어려운 대상이기에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동호회의 운영은 효과적이었다. 관객은 ‘실험예술을 왜 하는가?’부터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의문’, ‘직접 참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까지 다양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KoPAS는 질문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답변을 해나감으로서 실험예술과 대중을 잊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2003한국실험예술제」의 공연팀장을 맡고 있는 문재선은 실험예술의 이해를 위해 “실험예술은 시와 같다”라고 말한다. 대중은 ‘시’를 접함에 있어 그리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이 교육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역시 공연을 보고 들으면서 그 안에 담긴 함축적 행위 표현을 읽어나간다면 그리 어렵지 많은 않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충격적 행위만으로 인식되어온 퍼포먼스이기에 이러한 메시지가 한순간 전달되어 거리감을 좁혀나갈 수 없음이 안타깝다. 실험예술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린 고정관념을 흔들어 다양한 사고로 세상을 다시금 바라 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밀린 일기장을 메우고, 내일의 일기를 쓰다


지난 2002년 8월 7일부터 31일까지 홍익대학교 일대에서 국내 퍼포먼스계의 30여년을 정리하는 「2002한국실험예술제」가 열렸다. 「한국실험예술제」로는 첫 회 행사였지만, 국내 실험예술의 발자취를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중심지역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실험예술 축제이기에 「2002한국실험예술제」는 이례적인 대중의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올해 9월 13일 인사동과 홍대일대에 우퍼스피커의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003한국실험예술제」가 지난해 선보인 30여년의 기록을 오프닝으로 장식하며 문을 열었다. 이는 KoPAS가 추진하는 다양한 실험예술제 중에서 「한국실험예술제」만이 대중에게 가장 기억되는 행사이기에, 매년 열린다는 점에서 단발적 행사로 인식되는 점을 경계하여 지난해 예술제의 기억을 되살리는 연결고리이자, 앞으로 보게 될 실험예술 무대를 더욱 뜨겁게 달굴 전야곡이다.

예술성과 대중성, 학술성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 축제인 「2003한국실험예술제좦는 9월 17일, 인터넷을 이용한 채연정의 네트워크 퍼포먼스 {Info Performance}와 1967년 {투명풍선과 누드}로 최초의 행위예술가로 알려진 정강자의 {Big Brother Syndrome}이 오프닝 공연으로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채연정의 퍼포먼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내일의 표현방식이자,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하여 「2003한국실험예술제」가 추구하는 교류를 통한 교감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다. 오프닝의 메인공연인 정강자의 무대는 한국 실험예술의 30여년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잊는 의미를 가진 자리로, 한국의 퍼포먼스 30여년을 정리하고 실험예술의 내일을 알리는 무대였다.

또한 이날 오후 5시부터 2시간여에 걸쳐 한국실험예술의 개괄적인 역사와 앞으로의 대안을 짚어본 뜻 깊은 세미나 겸 좌담회가 열렸다. 본지 김윤섭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1세대 퍼포머부터 이론가, 연출가, 젊은 퍼포머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부문을 대표하는 발제자의 생생한 경험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었다. 참석자는 정강자, 성능경, 윤진섭, 문정규, 방효성, 심철중, 김백기 등의 국내 행위예술 관계자가 참여하였고, 호주의 여성 3인조 퍼포머 그룹인 크리에이티브 모빌리티(Creative Mobility) 회원들도 동석해 국제적인 활동 경험을 전했다. 이번 세미나 겸 좌담회의 세부내용은 행사를 마친 이후 발간되는 자료집에 자세히 선보인다고 한다.

「2003한국실험예술제」는 내용면에서 현재 퍼포먼스로 이해되는 실험예술의 진보적 확장무대와 타 장르와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실험예술무대로 나눌 수 있다. 갤러리라메르와 멀티스페이스 키친, 홍대앞 7개 클럽에서 열린 공연이 확장된 국내실험예술 무대라면,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일대에 펼쳐진 야외공연과 시어터 제로에서의 공연은 교류를 통한 실험의 공개무대인 것이다. 현재를 통한 예술성의 확장과 내일을 위한 실험예술, 두 가지 주제가 조화를 이루며 많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는 대중과의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고 꾸준한 노력을 해온 결과라 하겠다. 전시 내용면에선 대중화를 위해 관객의 눈높이를 맞춘 공연이 아닌 대중이 편하게 접하는 타 장르의 작가를 매체로 한 공연을 준비하여 거리감을 좁혀 나갔고,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와 관객의 리뷰에 대해 전시 티켓, 기념품 증정 등, 대중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 방법이 이뤄졌다. 이러한 점에서 「2003한국실험예술제」의 특징은 관객과의 소통이 본격화된 실험예술제라 하겠다. 1967년부터 지난 30여 년간 계속 되어온 한국실험예술의 기록엔 관객의 뒷모습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실험예술은 더 이상 그들만의 무대, 그들만의 일기장이 아니다. 「2003한국실험예술제」를 통해 새로 펼친 한국실험예술의 일기장엔 관객의 관심도 함께 써져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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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3 15:50:07

 

 

 

 

거리의 결투(116.5X90.5cm)2001


아토마우스, 대중을 유혹하다
이동기' CRASH / 일민미술관 / 8.29~9.28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만큼이나 대중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현대미술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현대인의 문화코드와 이동기의 문화코드가 맞다'고 하겠다.

보는 족족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고 작품의 메시지가 쏙쏙 전달된다. 참으로 편하고, 즐거운 미술이 아닌가?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를 놓고 '만화냐? 미술이냐?'부터 '이미 미키마우스를 토대로 태어난 아톰을 왜 다시 한번 미키마우스와 교배시켰냐?'까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 없다고 본다. 굳이 이동기와 아토마우스를 연계시키라면 '이동기가 평소 잠들기 전 꿈꾸던 정의의 히어로'라 말하겠다.

이번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전시내용은 꾸준한 관심을 보여 온 '아토마우스'시리즈와 작가의 삶 속에 강한 기억을 남긴 이미지가 1, 2층으로 나뉘어 전시되었다.
그렇다고 이동기의 작업이 지극히 개인적으로 '단지 하고 싶은 것을 소재로 한 미술'이라고 볼 순 없다. 개인적인 요소에 대중적인 코드를 맞춰나간 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작품을 보면 작품의 구도가 참 보기 좋다.
그것은 단지 화면을 효과적으로 채우기 위한 소재의 배치 이상이다. <국수를 먹는 아토마우스>를 보자.
끊어지지 않는 한도에서 자유로운 면발이 왜 하필 그렇게 말렸을까? 작가가 관객을 위해 만들어 낸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보기 좋은 선의 휘말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것은 근거 없는 딴지다. 개인적인 관심사를 그렸는지, 관객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맞춰나갔는지는 작가만이 알 일이다. 그래도 결과야 어찌되었든 이동기는 대단하다. 그는 직접 하였기 때문이다. 좀더 작품스러운, 좀더 무언가 함축적인 듯한, 좀더 언발란스한 확장을 위해 머리를 싸매는 가식을 이동기는 날려버린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대단하냐?'고 반문 할 수 도 있겠다. 이러한 반문을 자연스럽게 던진 사람에게 당신 또한 대단하다고 답변한다.

현대에 와서 특히 국내 현대미술의 갈래란 것은 혼란스러운 미술의 교통정리면서 우아한 자존심을 만들어 버린 잣대이다. 언제부턴가 순수미술은 순수한 자신만의 창조가 아닌 물질에 대한 순수한 작업으로, 도도한 콧대가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다. 물질에 순수한 낡은 가치관을 지닌 사람만이 작가인가? 그런데 웃기게도 그렇다고 보는 게 현 미술계다. 이러한 상황 속에 이동기는 일을 저질렀다. 순수미술을 미술의 본가라 하며 타 장르를 받아들임에 조심스러운 국내 미술계에서 이동기는 '아토마우스'를 꺼내놓은 것이다. '아토마우스'는 그래도 꽤 설명이 되는 작업이다. 그 외의 작품들은 미술로서 접근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 미술이라 불리는 잣대를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이동기는 대중에게 인기 있는 작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학력, 경력, 평론으로 성장하는 대다수의 작가와는 다른 길로 자라나고 있다. 대중에 의해서 말이다. 타 장르에서는 대중에 의한 성장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화와 디자인 등 자꾸만 멀어져가는 미술장르에서도 가장 큰 권력자는 대중이다. 이러한 풍토에서 미술의 본가만 무슨 똥배짱인지….

누가 알겠는가?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일이백년 안에 만화 혹은 디자인이 미술의 전통적 계보를 이어나갈 지 말이다. 고대벽화부터 미술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의 사랑이 늘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이 없는 장르가 계속하여 성장할 수는 없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를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동기의 작품 앞에 모이는 대중 또한 늘어가고 있다. 그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냐? 국내 현대미술계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과 잘 어울리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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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mandoll.com

D's folder/art+ 2013. 5. 4. 23:41

2003-11-08 01:34:53

 

 

 

 

*레인맨 <정발장군> 채색 전



레인맨의 인형나라( http://www.rainmandoll.com [새창에서 열기] )는 국내 원형사들의 모임이 이뤄지는 곳이다.


레인맨(이창근) 뿐만이 아닌, 다야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내 원형사의 작품과 홈페이지, 아마추어 원형사들의 신선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단점이라면, 홈페이지가 업글과정에서 상당부분 자료가 관리된지 못한 점과, 홈피 제작과정이 문제인지, 호스팅업체가 문제인지 로딩 시간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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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6 06:05:22

 

 

 

 


‘N Forniture’사의 ‘Nucleo'팀이 디자인한 잔디 의자는 자연과 인간이 현명하게 만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Nucleo’는 소비자에게 의자의 형태를 조립할 수 있는 골판지 조립과 잔디씨를 판매한다.
소비자는 먼저 자신의 잔디 의자를 만들 수 있는 땅을 고른다. 이후 선택한 장소에 골판지를 조립해 의자의 형태를 완성시키고, 골판지의 안에 흙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흙이 채워진 형태에 잔디 씨를 뿌린 후 물을 주고 잔디가 자라길 기다려 본다.
(국내에 판매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오늘날 세계의 업체들은 제품 디자인의 선택에 있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이에 창조성이 짙은 디자인은 전시 행사의 볼거리로 제공될 뿐, 실질적으로 제작 판매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제품디자인 선택기준은 자신들의 인지도를 가지지 못한 젊고 참신한 디자이너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대다수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현실과 타협하는 아쉬운 창조활동을 시작하게 만든다.
이에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에 치중하지 않고, 창조적인 아이디어 제품 생산하는, 끊임없는 실험장소로 남고자 하는 'N Forniture'를 소개하고자 한다.
‘N Forniture’는 이태리 토리노 지방의 젊은 디자이너 그룹 ‘NUCLEO'의 아이디어를 지원하면서 시작된다. 실현된 작품들이 전시회를 갖고 유럽의 매스컴으로부터 계속되는 주목 속에 호평을 받게 된 것이다. 이후, ‘N Forniture’는 ‘NUCLEO'뿐만이 아닌 능력 있는 젊은 디자이너의 발굴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또한 꾸준한 성장도 함께 하고 있다. ’끊임없는 실험공간‘이길 바라는 ‘N Forniture’의 창립정신이 지켜져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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