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9일 조민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명인이기 때문에 현재 확산되어가는 미투 운동의 대표적 가해자로 다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단문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과 내외부의 압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최초 보도 이후, 그를 향해 '가족에게 미안한 선택이었다, 책임의 회피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한 보도에, '한 인간으로서 그를 동정하고, 확산되는 미투운동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의견'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질문형유머 중에,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더럽고 슬픈 게 뭔지 아냐?'라는 것이 있다.

답은 '호랑이가 똥 싸고 죽은 것' 이다.

인간은 지극히 감정적 동물이기에, 두 가지 요소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미묘한 갈등을 갖게 되고 상황에 대한 결과를 찾기보다는, 감정의 선택을 우선으로 하고, 감정의 결정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게 된다.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근본적 문제를 수면 위로 노출시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명의 사망으로 분노가 동정으로 변화하는 꼬락서니라니.

흔한 인간들의 고유한 특성을 놓고 볼 때, 

조민기의 죽음에서 미투운동을 가해자로 변질시키고 언론을 주된 책임자로 지적하며, 조민기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인간들 대부분은, 

몇 시간 전까지 조민기만이 아닌 조민기의 가족에게 커터칼을 휘두르는 것 같은 악플을 달고 다닌 인간들일 확률이 높다.

감정의 변화 곡선(분노와 동정의 변화 곡선)이 큰 인간일수록 극단적 태도의 변화 역시 크고, 책임을 벗어나기 위한 비겁함으로 침묵한다.


조민기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음에 대한 책임을 미투운동의 지지자들에게 향하고 분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은 그의 가족들 뿐이다.


한 인간의 안타까운 죽음일지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분노와 동정의 저울질에 의해 멈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변화의 움직임은, 조민기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조민기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또 다른 가해자가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고, 잘못된 진술에 의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디즈니의 만화 같은 희생 없는 해피엔딩은 없다. 현실은 변화를 요구할 때 희생 역시 요구한다. 
악을 뿌리뽑고자 한다면, 악을 스스로 죽이겠다는 각오와 악의 죽음에 대한 책임 역시 동반된다.
악을 뿌리뽑고자 하면서, '닭이 어디 숨어있는지 알려는 줄테니 대신 잡아서 죽여주세요, 닭이 죽길 원하지만 닭의 죽음과 나는 무관합니다'라는 흔해빠진 온라인 몰이질 역시 '인간의 근본적 악'이다.

다수가 변화를 원했다면 다수가 칼을 들어라!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범인들처럼. 
그들은 살인을 했을지라도 비겁하게 모니터 뒤에 숨어 누군가 대신 칼을 들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조민기의 죽음이 남긴 것은, 

사회적 악을 뿌리뽑되 마녀사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변화를 요구할 땐 변화의 과정에서 발생할 희생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 

명확한 진실이 규명되기에 앞서 감정적 선택만으로 결과를 규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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