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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

'위기감'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학대하여 얻는 지속적 성장에너지. 과거 한국은 일본에 열등감을, 일본은 한국에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지금 한국의 2030 세대에겐 과거 일본을 이기려던 기성세대의 열등감을 찾을 수 없다. 역시 일본의 2030 세대에게 과거 한국을 내려봤던 기성세대의 우월감을 찾을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의 전세가 역적에 다다르게 된 이유는, 한국은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일본은 우월감에 심취되어 위기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열등감 '질투는 나의 힘' 위기감 '긴장은 나의 힘' 위기는 안정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성장 동력을 '위기감'이라 본다. 우월감엔 위기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위기감을 상실할 때 또다시 열등감을 마주하게 된다.

애국변태.

프라, 피규어, 원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중, 일본의 문화와 원형의 중심에서 국뽕을 외치는 요상한 것들을 자주보게 된다. 잡스런 실력에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한 것들, 대부분 이러한 것들이 내 눈엔 사기꾼으로 보인다. 그냥 일본의 문화가 좋으면 그대로 즐기면 그만, 애국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재역할을 하면 되는거지. 밤마다 일본 AV를 쳐보고 있음을 숨기고자 유교적 갑주로 일상을 위장한 것들처럼. 도대체 뭘 그리 숨기고 싶어, 그토록 티를 내며, 뭘 그리 위대하게 보이려, 결과물에 억지스러운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레깅스, 당당하게 입기 & 당당하게 보기

레깅스만을 일상복으로 입는 사람을 보게 된다. 간혹 보는 것이 아닌, 매우 자연스럽게 자주 보게 된다. 레깅스를 입는 것은 자유다. 그리고(문제는) 레깅스를 입은 사람을 보는 것도 자유다. '당당하게 입기 = 당당하게 보기' 일부에서 '니들은 당당하게 입어라, 우리는 당당하게 보겠다' 라고 말한다. '눈에는 눈', 이것은 민망한 노출에 시선성추행으로 보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방식은 이해할 수 없어도, 그들의 분노는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레깅스 착용의 목적은 변화했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레깅스 착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당당하게 입기 = 당당하게 보기' 어쩌면 견제를 통해 사회 질서의 균형을 맞춰나가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겠다.